이민 목회에서 목사와 성도가 함께 겪는 가장 고통스러운 아픔중 하나는 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하던 교인이 같은 지역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아픔이라 생각됩니다. 미주한인교회나 한국교회에서만이 겪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이젠 미국교회에서도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다음 ---아래 부분은 몇년전 크리스챤 투데이지에서 ‘교회 샤핑보다 교회 하핑이 더 큰 문제’라는 제하 기사에서 인용된 글이며-이 아픔에 관하여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의 벳지 하트씨의 논평을 인용한 글을 읽으며 한 지역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로서 추가로 ‘교회 설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shopper 나 hopper 가 아닌 surfer로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다음 인용글을 통하여 하트씨의 교회샤핑과 교회하핑 지적을 눈여겨보기로 합니다.
<교회 샤핑>은 새로 이사온 교우가정이 한 교회를 정하기전 여러 교회를 다녀 보며 자신과 가족에게 맞는 교회를 찾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하핑>이란 내 마음에 맞는 교회를 찾아 한 지역에서 이교회 저교회로 옮겨 다니는 철새교인 이라고 했습니다. 한 지역교회의 정식 등록교인으로 마음을 정하고 결심과 헌신의 서약을 해 놓고는, 심지어 직분을 맡은자들이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쉽게 같은 지역 다른 교회로 옮기는 교회생활을 교회하핑이라 지적한것입니다.
교회를 옮기는 이유가 “이 교회 목사님의 설교엔 새로움이 없어 졌어” “목사님의 목회방침이 나와 맞질않아” “목사님이 나에겐 관심이 없어졌어” “이 교회의 음악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 “주일학교의 디렉터가 마음에 들지 않어” “이 교회의 시설은 우리자녀의 교육환경에 맞지않아” “이 교회 성도들은 나와 수준이 맞지않아” “이 교회는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등등의 이유라 할것입니다. 거기엔 자신만 가는 것이 아니라 친한 교우가정까지 선동하여 같이 ‘보따리’를 싸서 보라는 듯 옆 교회로 옮겨 가기도 합니다. 하트씨는 같은 지역에서 교회를 옮긴 사람은 일반적으로 머지않아 또 다시 다음 하핑할 대상 교회를 찾게 되는 습관성 하핑어가 된다고 말합니다. 본인은 자신만을 생각하지만 옳든 그르든 그 영향은 반드시 다른사람에게 전염됩니다. 남은 교인들로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불필요한 의혹을 가지게 하며, 특히 목사에게는 교인이 옆 교회로 옮기는 만큼 실망되고 마음 아픈 일이 없을것입니다.
작은 교회는 빈 자리 만큼이나 더 힘들어 하지만 대형 교회도 담임목사나 성도들의 고통은 마찬가지라 할수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목사도 사람인지라 자존심도 상하고 맥이 빠지는것이 당연합니다. 더 품어주지 못한 부족함을 자책하며 고통스러워 하기도합니다. 궁극적으로 담임목사의 부족함의 책임감을 갖지만 서운하고 괘씸한 생각까지 들기도 할것입니다. 더 형편이나 조건이 나은 교회로 가는 성도를 붙잡지 못하는 목사의 심정은 서글픔을 다 표현못할 것입니다. 가까이 교제 했던 성도들도 고통스러워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같이 놀던 자녀들도 혼돈스러워하고 기가 꺾이기도 하구요. 물론 다니던 교회가 비성서적인 신학문제나 교회 지도자의 도덕적 문제(금전문제, 성적문제등) 가 생겨 도저히 머물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교회를 옮겨야 할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이 흩어져 있어 한 교회에서 섬기기 위해 옮기는 경우도 가능한 이유가 되기도합니다. 아무리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라도 언제나 오는 사람들이 있고 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기로 공식적으로 서약하고 서명 해놓고는 비 본질적인 문제로 쉽게 이웃 교회로 ‘크리스챤의 의리’도 없이 ‘교회 하핑’하는것은 자신은 편할지 모르지만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는 큰 구멍을 내는 일이라 할수 있습니다. ---------------------------- 위의 기사를 생각하면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개척교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이민교회의 어쩔 수 없는 열악한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설핑의 원리를 다시 생각하고 싶습니다. 교회샤핑과 하핑에 연관된 누구 누구의 자 잘못이나 시비를 가리기전 아무리 적은수의 성도로 구성된 지역교회 일지라도 성경에나타난 교회설핑 “보냄, 파송”의 원리에 시선을 모으고 싶습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의 몸 된 지역교회를 세우기 위해, 또다른 연약한 지체들을 돌보며 세워나가는 사명을 위해 축복하며 떠나 보내는 설핑-마치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파도를 타며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그런 교회관을 우리성도들이 확실히 붙잡고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고난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도 수시로 어려운 일을 당하고 다양한 위기를 겪게 됩니다. 내부에서 혹은 외부에서 불어치는 바람으로 파도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마치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흔히 볼수 있는 설핑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 파도를 피하기 보다는 그 파도를 타는 ‘설핑’교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용서받은 자들로 구성된 불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물론 그 항해의 선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이를 때까지 부단히 변해가는 문제투성이의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세월이 흘러도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모순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의 환경을 통해서 서로를 빚어가심을 믿습니다.
바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하듯 너무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엔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 맞는 말일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만남 속에서 빚어지는 바람은 때로는 거친 파도를 일으킵니다. 설핑하는 사람들은 파도가 크면 클수록 더 스릴 있고 감동적인 설핑을 하듯, 교회 안에서 우리도 믿음의 설핑을 통해 신앙성숙의 기회로 삼는다면 한 지역에서 다른 교회들로 ‘하핑’하는 상처와 고통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현대인들이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관에 대한 생각도 ‘사랑하는 동안만’ 이라는 전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배우자 하핑’을 당연시하는 ‘나 중심의 문화’가 교회안에까지 들어와 ‘교회 하핑’이라는 잠행성 트랜드의 증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트씨는 덧붙여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교회도 저교회도 다 하나님의 가족이니까 괜찮지 않느냐, 고 반문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상처를 주는 일 보다는 어려울 때 함께 있어주는 가족이 되어야 할 것이라 사료됩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평생을 통하여 “한 지역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못한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수 없다”는 가르침은 오늘날의 쳐치 샤핑과 하핑의 세대에서 지역교회에 관한 본질적인 것을 지적해주는 아주 중요한교훈이라 생각됩니다.
지역교회를 정한 ‘교회 샤퍼’가 한 지역에서는 다른 교회로 옮겨다니는 ‘교회 하퍼’가 되지 말고 오히려 ‘교회 설퍼’가 되어진다면.... 다른 개척교회를 돕기위해 교회에서 세움 받아 파송 받는 일 외에는 비록 부족한 목사, 문제 있는 교회라도 너무 성급하게포기치 말았스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변화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그 변화를 위해 나를 지금 두신 곳이 바로 우리가 있는 지역교회라는 생각을 먼저 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샤핑과 하핑의 트랜드속에서 그래도 성령이 인도하시는 설핑의 파도가 이민교회들과 우리 상항서머나 교회에 다시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한모퉁에서 또다시 새로운 이민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떠 오른 단상을 몇자 적어봅니다.